교육행정직으로 살아가기/홀로서기

7. 나우리회 열성 회원

문 약 2023. 9. 6. 22:02

 처음 임용이 되었을 때부터 실장님이나 주무관님들께서는 금방 고향인 B지역으로 발령이 날 거라는 식으로 자주 말씀을 하셨다. 우리 지역은 청주에 들어가기 위해선는 줄서서 기다려야하지만 그 외 지역은 희망하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기도 했고 예전에는 8급 승진부터 바로 인사이동을 시키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내가 임용되기 좀 전부터 8급 승진자에 대한 인사이동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연유로 최저 근무기간인 1년 6개월이 지나거나 승진이 되면 B지역으로 발령이 날 거라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던 것인데, 실제로 내가 1년 6개월을 기점으로 전보내신서를 썼다면 발령이 났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내 고향은 인기가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고 행정실 분위기에도 매우 만족했기 때문에 전보 내신서를 쓸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1년 7개월을 근무하고 승진 발령이 난 것이었다.

 인사발령 공문에는 내 근무지가 A교육지원청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승진발령이 나면 우선 관할 교육지원청으로 발령이 나고 십중팔구는 근무 중인 학교로 다시 임지지정을 하는데, 당시는 그런 사실을 몰랐기도 했고 주변 선생님들도 교육지원청 발령이 난 것이냐며 소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장님이 금방 설명을 해주셨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실제로 인사상황에 따라 타 학교나 교육지원청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도 있긴 있다.) 다음 날 관내발령이 났고 다행히 내 임지는 A학교 그대로였다.

 

 승진을 했다고 바뀐 것은 없었으나 업무에 익숙해질수록 점점 여유는 생겼고 자연스레 선생님들과 관계를 맺는 일도 많아졌다. 이 무렵부터 그나마 같은 학교 직원들과의 대화는 다소 편하게 느꼈던 기억이다. 그리고 정확한 순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 즈음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선생님들도 인사발령이 몇 있었고 운전 주무관님이 인사이동을 하셨으며 교장 선생님도 새로운 분이 부임하셨다.

 새로 온 운전 주무관님은 전 주무관님에 비하면 훨씬 더 붙임성이 좋으신 편이었고 농담도 즐겨하시는 분이었다.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사무실 분위기도 여전히 좋았다. (물론 내향적인 나는 다소 피로감도 느끼긴 했으니 일장일단이었다.) 새로 온 교장 선생님은 공모 교장으로 오신 분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공모 교장 서류를 행정실에서 접수하기 때문에 발령 전에 만날뵐 수 있었다. 당시에 두 분이 응모를 하셨는데 그 중 우리가 되길 원했던 분이었다. 그 정도로 첫 인상이 나쁘지 않았고 실제로도 즐겁게 근무할 수 있었다.

 

 근무 기간이 늘어날 수록 업무에는 한층 능숙해지고 있었기에 점점 여유가 생겼다. 일에 대한 실력이 한창 느는 시기라 그런지 일이 재밌었고 자연히 욕심도 생겼다. 실장님이 가져가셨던 특수학급 지출도 은근슬쩍 서류를 실장님께 드리지 않고 직접 원인행위를 올렸고 다른 자잘한 건들도 내가 지출을 했다. 처음엔 서류를 달라며 만류하시던 실장님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두셨다. 연말에는 아예 예산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실장님은 이번에도 굳이 미리 해볼 필요는 없다. 예산을 못 하겠으면 차라리 인증서 들고 찾아오라며 만류하셨으나 나는 계속 고집을 부렸고 실장님은 결국 탐탁치 않아 하시면서도 본예산을 넘겨주셨다. 실장님에게 줄곧 물어보면서 어설프게 본예산을 짜게 되었고 이 판단은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나우리회에 댓글도 달기 시작했다. 좋은 분들 덕분에 출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상황이었지만 임용 초기의 그 암담했던 심정은 여전히 생생했고 나우리회를 보다보면 그 시절의 내가 연상되는 질문 글들이 빈번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댓글을 달다 보니 나름 재미도 있었고 나 스스로에게도 공부가 되는 일이 많았다. 틀린 댓글을 누군가 고쳐줌으로써 배우는 일도 있고 남에게 설명하다보니 내 스스로 애매했던 개념을 다시 정리해보거나 규정을 찾아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했던 기억이다.

 

 나는 학교에서 구라쟁이라고 불렸다. 승진과 함께 날아간다로 시작해서 발령 이후 정기 발령시즌이나 학기에 맞춰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며 주변에선 말했고 나 스스로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발령은 계속해서 나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구라쟁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러나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는 법이고 기관 만기인 3년은 차곡차곡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