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직으로 살아가기/홀로서기

5. 새로운 실장님과 일하다

문 약 2023. 8. 16. 00:04

 실장님의 인사발령에 가장 놀란 건 실장님 본인이셨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발령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장님이 실수하신 거였다. 지금은 청주시를 제외하고는 지역 만기가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10년인가 지역 만기가 있었다. 실장님은 해당 지역에서 만기를 채우신 상태였는데, 기관 만기만 생각하고 지역 만기를 미처 생각하시지 못한 거였다. 3개월 정도 근무해서 이제 좀 말이라도 붙여보는 상태가 됐는데 실장님이 바뀐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곧 전체 송별회와 행정실 송별회 날짜가 잡혔다. 실장님은 학교 구성원들과 두루 친하셨던 분이었어서 아쉬워 하는 분들이 참 많았다. 행정실 송별회를 위해 실장님을 모시고 가는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 또한 더 근무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살짝 눈물이 났다.

 

 새로 오신 실장님은 첫 실장님과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전임지에서도 전임자와 후임자로 만난 사이라고 했다. 키가 훤칠하신 미인 실장님이셨는데 나와 나이 차가 두 살인가밖에 나지 않았다. 내가 늦게 임용된 것도 있고 실장님이 일찍 들어오신 것도 있었다. 실장님은 처음 인사 오셨을 때는 첫 실장님과 안면이 있으셨어서 그런지 말을 많이 하셨는데 막상 출근을 하시고 나서는 안면이 있으신 운전 주무관님과 농담을 조금 주고 받으실 뿐 말수가 상당히 적으셨다. 그러다보니 좀 무서운 인상이 있었다. 사실 첫 실장님이 발령나신 후 자기 후임으로 두 명 중 한 명이 올 거 같은데 한 사람은 정말 사람이 착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를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일적으로 확실한 사람이어서 내가 같이 일하기에는 후자가 더 좋을 거란 말씀을 하셨다. 지금 온 실장님이 바로 후자의 실장님이었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사무분장에는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새 실장님은 나홀로 실장을 오래 하신 분이었어서 기본적으로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셨다. 첫 실장님은 회계 관련 말고는 딱히 말씀이 없으셨는데 새 실장님은 급여나 다른 기안문도 검토를 해주시곤 했다. 실장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필요하셨던 건지 좀 시간이 흐르자 곧잘 잡담도 하시기 시작했다. 하기사 나중에 듣기로는 나홀로 실장 시절엔 하루에 말 한마디 없이 퇴근한 적도 많았다더라. 교무실무사님이 나이도 비슷하도 성별도 맞다 보니 서로 말이 잘 통했는지 자주 놀러오시곤 했다. 기존 실장님일 때도 오시기야 자주 오셨지만 확실히 수다의 양이 많아진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급여 원인행위를 하는데 예산이 없어서 원인행위가 불가하다는 팝업이 떴다. 실장님께 말씀드리고 살펴보니 원인은 이러했다. 당시는 교육공무직 인건비를 교육청에서 교부해주고 이를 학교회계로 집행하는 구조였는데, 특수교육실무사에 대한 인건비가 3월 급여가 나가야 할 때까지도 교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전임자 분은 교무실무사 예산에서 특수교육실무사 급여를 우선 집행하고 교부가 된 후 이를 과목경정했다. 분할 경정이 안 되던 시기니 지출 반납결의 후 재 지출하는 방법으로 과목을 바로잡았다.

 문제는 내가 보수(인건비)에서 전임자의 원인행위를 복사해서 쓰다보니 계속 교무실무사 예산에서 특수교육실무사 급여가 나간 것이었다. 당연히 교무실무사 인건비는 금방 바닥나버렸고 원인행위가 불가능하다는 팝업이 뜬 거였다. 전임자의 기안문을 참고해서 지출 과목을 바로잡았는데 실장님이야 별 말씀 없으셨지만 교장선생님이 문제였다. 몇 달 치 급여에 대한 반납결의와 재지출을 올리자 바로 말씀을 하셨고 올라가서 사정을 설명드려야 했다. 교장선생님은 결재취소가 올라오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시는 편이었다.

 

 첫 실장님께 이체를 부탁드릴 때는 서류를 다 챙겨서 지출결의서와 함께 보여드려야 했는데, 새 실장님은 처음에는 굳이 서류를 보지 않겠다 하셨다. 그러나 결재취소 때마다 교장실에 올라가는 걸 보시고는 신규고 하니까 서류를 봐야겠다고 하시면서 기존에 어떤 식으로 했는지 물으셨다. 대답을 듣고 나서는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시면서 어떻게 지출 서류를 검토하는지 물어보셨다. 전화를 마치신 실장님은 지출결의에서 서류를 검토하는 게 맞겠지만 교장선생님이 깐깐하신 편이니 원인행위에서 서류를 달라고 하셨다. 나홀로를 오래 하셔서 그런지 일의 효율성을 상당히 중시하셨다. 전임자가 하던대로 원인행위 시 증빙자료를 스캔하여 첨부하는 중이었는데, 번거로우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귀찮은 건 질색하는 편이다보니 여러모로 실장님과 일하는 스타일이 맞는 편이었다.

 

 우당탕당 업무를 하다보니 실장님과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그래도 말 한두마디는 나눌 정도가 되었고 그나마 학교에 적응을 하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자연히 인사발령도 날아왔다. 이번에는 시설관리 주무관님이 떠나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