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직으로 살아가기/홀로서기

6. 순조로운 성장

문 약 2023. 8. 29. 22:48

 처음 왔을 때 어리버리하던 나를 데리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소개시켜주셨던 시설관리 주무관님이셨기에 전보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실장님 때와는 확실히 달랐던 것이 본인도 가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셨기 때문이다.(이 번에 가는 걸 원하신 건 아니었지만) 연세가 상당하셨음에도 서스럼없이 다가가 장난도 많이 치시고 여러모로 학교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신 분이었어서 다들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새로 오시는 시설관리 주무관님은 교육지원청에서 근무 중인 분이셨다. 운전 주무관님과는 안면이 있으신 듯했다. 나이가 상당히 젊으셔서 나나 실장님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행정실의 최고 연장자는 운전 주무관님으로 변경되었다. 새로 오신 시설관리 주무관님은 상당히 다부진 체격으로 한 눈에 보기에도 몸이 단단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힘쓰는 일에 아주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셨다.

 기존 시설관리 주무관님 역시 상당히 일을 잘하시는 편으로 평판이 좋았지만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바깥 일에 전념하셨다. 당시 에듀빌이 막 도입되었기에 에듀빌 사전 작업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써가며 애를 먹었는데 새로 오신 시설관리 주무관님은 본인이 에듀빌을 하시겠다고 선뜻 말씀하셨다. 그 밖에도 시설관리 용품 구매나 소규모 수선 등은 본인이 직접 품의를 하시는 등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바깥일에 소홀하신 것도 아니었다. 항상 새벽에 출근하셔서 수목관리를 하셨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시설 일을 손쉽게 끝내셔서 실장님이나 교장선생님도 감탄하시곤 했다. 지금까지도 이 시설관리 주무관님보다 더 낫다고 여길 만한 시설관리 주무관님을 만나보지 못했다.

 

 아니, 이 때보다 나은 행정실 조합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으리라. 업무를 폭넓게 아시면서 실무를 도맡아 하시는 유능한 실장님, 행정일과 바깥 일을 전천후로 처리하시는 시설관리 주무관님, 본연의 업무는 물론이고 시설 주무관님의 바깥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운전 주무관님. 다들 성격도 좋으셔서 행정실 분위기는 실제로 매우 좋았다. 공무직 분들도 다들 좋으셔서 의기투합해 여기저기 많이 놀러다니곤 했으니까.

 나도 어느정도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는 시점에 시설 주무관님이 행정일도 봐주시다보니 부쩍 여유가 생겼다. 그 즈음 그나마 같은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가끔 물어보던 동기와 이야기를 할 때 말이 안 통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이 행정실로 찾아와 질문을 해도 대부분 실장님 오시면 여쭤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내 사무분장은 첫 실장님하고의 사무분장 그대로였는데, 실장님이 학운위, 예산, 공사, 계약, 지출을 하셨고 그 외를 내가 했다. 하지만 2인 행정실에서 실장님이 지출을 다 하는 학교는 우리 학교 뿐이었다. 지출을 아예 차석이 다 하는 학교도 흔했고 계약을 하는 학교도 있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계약이랄 것도 아니지만) 그러다보니 뭔가 조바심이 났고 실장님께 지출을 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실장님은 굳이 미리 해볼 것 없다고 손사레를 치셨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고 하자 고민을 하시더니 신용카드와 유치원, 특수학급에 대한 지출을 해보라 말씀하셨다.

 

 콜포비아였던 나는 나우리회, 법제처, 매뉴얼 등을 찾아보며 일하는 편이었는데, 지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실장님에게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 배우고 나서는 규정을 탐독하며 일을 처리했다. 실장님은 그렇게 규정을 찾아서 일하시는 분은 아니었기 때문에(지금도 한가해서 그런 거 찾아보는 거라고 바빠 죽겠는데 언제 찾아보면서 하냐고 농담하시곤 한다.) 회계 규정 등은 잘 알고 계셔도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는 관심이 없으신 편이었다.

 반면에 나는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 항상 궁금해하는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실장님께 질문도 많이 하고 규정을 찾아서 실장님께 보여드리며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상당히 재밌었고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실장님도 그냥 해오던대로 했고 그걸 누가 지적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왜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으셨을 뿐이지 같이 업무에 대해 논의할 사람이 생겨서 좋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지출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중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1. 연간 용역은 품의를 생략할 수 없고 계약 건의 원인행위부 등재일자는 계약 체결일이므로 연간 용역을 공공요금및용역관리에 등록하여 원인행위할 게 아니라 계약 체결과 함께 원인행위하고 지출을 나누어서 하는 게 맞지 않냐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월정액으로 지급하는 건들은 모두 연초에 원인행위하고(직책급 업무추진비까지도) 지출을 나누어 했는데 교장샘의 복무와 상관없이 지출만 바로바로 올릴 수 있어서 편했던 기억이다. (요 덕에 재미를 본 일이 있었는데 연초에 1년치 원인행위를 해두니 집행률이 대폭 상승해서 상반기 집행률이 압도적이었다. 이 이후로는 지출금액을 기준으로 집행률을 산정하게 바뀌었다. ㅎㅎㅎ)

 2. 신용카드를 사용한 날짜로 원인행위부 등재일자를 작성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는데 과거에는 세출예산 집행지침에 신용카드 사용으로 원인행위를 결정한다라고 되어 있었던 반면 현재 세출예산 집행지침에는 신용카드를 사용한 후 원인행위를 결정한다로 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신용카드를 사용한 날짜가 원인행위부 등재일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부분이었다. 실무상 크게 변한 것은 없었지만 규정을 찾아보고 매뉴얼을 찾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 경험이었다.

3. 실장님은 처음 지출을 가르쳐주실 때 원인행위에서 발의일자(현재는 원인행위일자로 표시됨)를 품의 결재일자와 동일하게 작성하셨는데 원인행위부 등재일자는 계약일자이므로 품의 결재일자와 발의일자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말씀드렸더니 수긍하시고 바꾸신 일이 있었다. 이 일은 최근에서야 내가 틀렸고 실장님이 맞는 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실장님께 이실직고 드렸으나 실장님은 기억을 못하셨다는 게 함정 ㅎㅎㅎ)

3-1. 회계실무를 살펴보면 발의일자란 지출결의서의 시작일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품의 승인일자를 기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원인행위부 등재일자는 원인행위 확정일자에 기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K-에듀파인은 발의일자를 원인행위일자로 변경했고 시스템에서도 원인행위일자를 계약일자로 처리하여 승낙사항을 작성하는 상태이므로 지금 시스템에서는 원인행위일자=계약일자=원인행위확정일자=원인행위부 등재일자가 되도록 작성해야 한다.

 

 지출을 처리하니 선생님들과 대화할 일도 많아지고 실장님과 논의도 많이 하게 되면서 뭔가 일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제법 좋았던 기억이다. 실장님이 참 좋으신 분이었던 것이 분장을 새로 하고 좀 시간이 지나자 내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특수학급에 대한 지출은 다시 본인이 가져가버리셨다. 이런 순조로운 분위기에서 나는 승진 발령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