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직으로 살아가기/홀로서기

3. 도대체 교육공무직이 뭐야?

문 약 2022. 6. 19. 21:32

 행정실 회식이라고 해서 행정실에 있는 네 명만 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행정실 구성원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았다. 행정실 회식은 전체 회식에 비하면 한결 마음이 편했다. 신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부터 학교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여기서도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행정실 분위기가 참 끈끈하다는 게 느껴졌다.

 

 출근 셋째 날 오늘은 야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결재 대기의 문서를 열고 첨부파일을 연 순간 5천만 원의 행방이나 급여 작업에 대한 걱정 등은 깔끔하게 잊을 수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엑셀 서식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작년에 전임자가 보낸 엑셀 서식을 옆에 열어두고 채울 수 있는 건 채워나갔다. 그러나 인적사항 등 기본 사항을 입력한 후에는 더 이상 작성이 불가능했다. 이 날부터 급여 마감일 전까지 야근을 하면서 매달렸다. 전임자의 파일을 아무리 뒤져도 교육공무직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디. 한참을 헤맨 후에야 회계직원이라는 폴더가 교육공무직에 관해 정리해놓은 폴더라는 걸 알게 됐다. 그 폴더에는 연차수당이나 퇴직금 관련 엑셀 서식도 있었다.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해당 서식들의 날짜를 마음대로 바꿔가면서 그럴듯한 값을 얻어냈고 그대로 제출했다. 교육공무직 현황 조사서를 제출한 것이 아니라 엑셀로 쓴 소설을 제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공문을 제출한 뒤에도 너 무슨 공문을 이따위로 작성해서 보냈냐고 전화라도 올까 봐 한동안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도(?) 그런 전화는 오지 않았는데 이게 과연 다행인 건지 생각해볼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공무직 현황 조사서를 제출하고 나니 급여 마감 기한이 다가왔다. 검토고 나발이고 실적이력 생성해서 마감시키고 나서야 그동안 접수만 하고 처리하지 못한 공문들과 업무 매뉴얼에 적혀있는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실장님께서 교장실에 다녀오신 후 쪽지 하나를 주셨는데 전임자가 지난달 초에 기안했던 공문 목록이었다. 교장샘 입장에서는 전임자가 이 무렵이면 이 정도 공문을 기안했는데 신규가 와서 거의 기안하는 게 없으니 일을 제대로 하는 건지 불안하셨나 보더라. 실장님은 웃으시면서 불안할만하지 않겠냐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가뜩이나 신규라 모든 일이 느려 터졌는데 열흘 정도를 공무직 현황이라는 소설 집필에 매달렸으니 야근을 해도 일이 줄지 않았다. 야근을 못하게 하는 악덕 관리자들도 있다던대 실장님은 물론이고 교장샘도 퇴근하기 전에 행정실에 들러 고생 많다는 인사를 해주시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무직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당시는 공무직 급여 계산법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쉬웠기 때문에 엑셀 서식만 보고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문제는 4대 보험 연말정산이 있는 달이었다는 거다. 4대 보험 관련 검색을 해보고 지난 연도 급여 내역을 살펴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여기서 항복을 선언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실장님께서 알려주셨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것이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참 친절하셨다. 같이 공단 홈페이지를 열어서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셨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표정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어렵죠? 지금 주사님 입장에서는 하나도 이해가 안 갈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 그대로였다. 분명히 수화기에서는 친절한 설명이 들려오고 있었으나 4대 보험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는데 연말정산이 이해가 갈 리가 없는 것이다. 공단 홈페이지 메뉴 사용법을 익힌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전임자가 알려준 보험료의 요율과 공단에서 출력한 자료를 조합하여 나름대로 그럴듯한 값을 얻어냈고 급여를 지급했다. 다시 밀린 일을 해치우며 야근을 이어가던 중 기관부담금을 지급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공단 홈페이지에서 보험료 고지서를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급여 작업하면서 공제한 보험료가 죄다 엉망이었던 거다. 행정실에 놀러 와 실장님께 이번 달은 보험료 때문에 월급이 줄었다며 건강보험공단을 도둑놈이라 욕하던 교무실무사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은땀이 흘렀다.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건강보험공단이 아니라 나였던 것이다.

 고지서를 보며 기관부담금을 지출하고 나서야 현금출납부를 맞추었다. 전임자의 업무 매뉴얼 가장 첫 번째에 있었던 전월 현금출납부 결재를 그제야 올릴 수 있게 됐다. 교육공무직 현황을 작성하면서 뒤져본 퇴직금 서식이 큰 도움이었다. 세외 현금출납부의 차액은 퇴직금 적립 총액과 완전히 동일했다. 보조책상 서랍에서 퇴직적립금 통장까지 찾아내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서류를 꾸리고 실장님 결재를 받아 교장실로 올라갔다. 처음 서면 결재를 받으러 가는지라 적잖이 긴장됐다. 교장샘은 서류를 보시며 펜을 드시더니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보라 하셨다. 순간 당황하였으나 20여 일을 고생하면서 맞춘 현금출납부이다 보니 더듬거리며 설명할 수 있었다. 발령받은 직후 올라왔으면 설명을 제대로 못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전화위복이랄까? 설명을 들으신 교장샘은 웃으시면서 서명을 해주셨고 첫 서면 결재를 득했다.

 

 그렇게 발령 첫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달에는 그래도 한 번 씩은 해본 일들이니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보았지만 교육공무직과 4대 보험은 나를 그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