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직으로 살아가기/홀로서기

2. 사라진 5천만 원

문 약 2022. 5. 18. 19:12

 처음 A교육지원청에서 임용장을 받고 돌아가는 길,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발령 즈음해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워낙 많이 받았던지라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A교육지원청에 근무 중인 동기였다. 오늘 임명장을 받으러 온 것을 보고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한 것이다. 동기라고 해봐야 결국 초임지 동기들만 남는다던데 초임지 동기들과 만이라도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동기로 추정된다는 이유만으로 불러준 주무관님께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여전히 두려웠기 때문에 제대로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고 결국 모처럼의 기회도 허망하게 날려버린 채 첫 출근을 하게 됐다. A초등학교의 행정실은 행정실장님, 시설관리 주무관님, 운전 주무관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들 나이가 많으신 편이었기에 무척 어려웠는데 그래도 시설관리 주무관님이 잔뜩 얼어있는 나를 데리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직원들에게 소개해주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는 등 살갑게 대해주신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교무실에서 전 교직원에게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행정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권한이 아직 안 들어와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컴퓨터에서 이 파일 저 파일 열어보고 전임자가 적어둔 업무 매뉴얼을 힐끔거리다 보니 오전이 지나갔다. 실로 오랜만에 학교 급식을 먹으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초등학교라 그런지 간이 전체적으로 밍밍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커피를 마시며 실장님께서 첫날은 원래 권한도 안 들어오고 할 일이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르신들의 담소를 배경음악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점심시간이 끝났다.

 다행히 오후에는 권한이 들어왔다. 벌써 문서 몇 개가 배부되었다. 과거에 똑같은 공문이 있었는지 검색해보고 과제카드는 뭘로 잡았는지 결재선은 어떻게 잡았는지 보면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한 일의 대부분은 전임자가 한 것을 무지성으로 따라 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매일 출근하면 통장잔고와 현금출납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전임자가 작성해준 업무 매뉴얼을 열어 현금출납부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당장 며칠 전 눈앞에서 일치하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회계의 시재는 잘 맞았다. 문제는 세입세출외현금이었는데 통장에는 100여만 원이 남아 있는 반면 현금출납부에 찍혀 있는 금액은 5천만 원이 넘었다. 당황해서 인터넷뱅킹을 다시 뒤져봤지만 5천만 원이 넘는 계좌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큰 차이에 덜컥 겁이 나 실장님께 말씀도 못 드리고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없던 5천만 원이 생기겠는가? 속이 타건 말건 시간은 흘러 퇴근시간은 다가왔다. 야근을 해서라도 이 사태(?)를 수습하고 싶었지만 저녁에는 환영식이 잡혀있었다. 첫 회식 메뉴는 석갈비였고 자리는 교장샘 앞, 실장님 옆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술잔을 받았다. 어리버리하고 있는데 다행히 실장님이 옆에서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술을 받고 일어나 인사를 하고 건배사를 했다. 물론 이 인사말과 건배사는 며칠간 고민해놓은 준비물이었다. 그럼에도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직원들의 질문공세에 대답을 이어가다 회식이 끝났다.

 

 둘째 날도 첫째 날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배부되는 공문을 읽어봐도 머리에 들어오는 건 없고 여전히 세외 현금출납부는 안 맞고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전임자 분이 인계인수를 하면서 말하길 내가 해야 하는 업무는 실장님께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행정실 사무분장은 실장님이 예산, 계약, 학운위, 공사, 지출, 보안을 하셨고 나머지 업무는 나에게 분장되어 있었다. 교육행정일을 해본 사람은 사무분장을 보면 전임자 분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내 하는 업무는 과거에는 공채 출신이 하지 않았던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실장님께서 잘 모르는 부분은 차석에게 일임하고 본인이 전반적인 회계업무를 다 처리하셨던 거다. 사실 2인 행정실에서 실장님이 저 정도 해주는 곳은 많지 않다. 실장님이 차석 분에게 회계업무를 가르치면서 일도 좀 넘기려고 했는데 덜컥 신규가 와버리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했다. 차석은 차석대로 걱정이었던 것이 자기도 이제 좋은 실장님 밑에서 예산과 계약 등을 배워나갈 생각이었는데 뜬금없이 발령이 나버린 것이다. 실장님은 나에게 차석이 간 학교가 매우 힘든 곳이니 가급적이면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 대신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주시면서 급여에 능통한 분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 하셨다. 전화를 걸어 우리 신규가 전화할 테니 잘 좀 알려달라는 당부의 말까지 하시면서. 당시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다. 차석이 갔던 학교가 정말 최악의 근무지였다.

 콜 포비아라는 말이 있다. 대인기피증이 생기기 전에도 이상하게 전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물며 당시는 어땠을까? 안면 하나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말이라도 몇 번 해본 전임자에게 메신저 등으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실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상태니 그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혼자 낑낑거리던 와중 인터넷 즐겨찾기에 있는 나우리회를 발견했다. 입직하기 전부터 교육행정 관련 카페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떡하니 즐겨찾기가 되어 있는 걸 보니 몹시 신기했다. 가입을 하고 둘러보았으나 흰 건 바탕이요 검은 건 글씨라 외계어가 난무하는 곳일 뿐이었다. 그래도 의지할 곳이 없으니 검색도 많이 해보고 닥치는 대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5천만 원의 행방은 나우리회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과 며칠 만에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증발했을 리는 없고 단지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행정실에 오가는 직원 분들이 월급 까먹지 말고 잘 주라는 농담을 심심찮게 던졌던지라 전임자의 매뉴얼을 보며 급여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평달의 공무원 급여라는 게 할 일이 별로 없다. 근무상황부 출력해서 근무일수 세보고 시간외근무 초과분 계산해보고 하니 급여 작업이 다 끝났는데 문제는 당시의 내가 급여 작업이 끝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거다. 다 끝난 급여를 계속 만지작거리다 보니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둘째 날은 행정실 환영회가 잡혀 있었다. 오늘 회식은 또 어떻게 넘겨야 하나 걱정하며 자리를 정리하던 중 결재 대기에 숫자가 보였고 클릭해보니 교육공무직 현황 조사라는 공문 제목이 보였다. 내일 접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공문이 불러올 미래를 상상도 못 한 채 회식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