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직으로 살아가기/홀로서기

1. 정말 이대로 출근해도 되는 건가?

문 약 2022. 5. 7. 18:21

 공직생활 통틀어 가장 자존감이 충만할 시기가 바로 시험 합격 후 발령 나기 전까지라고 하지만, 처음 신규자 임용 교육을 들으러 가는 길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20대의 한 발 늦은 질풍노도 사춘기를 지나 수험기간을 거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대로는 합격해도 사람 구실을 못 하겠다는 생각에, 사람을 상대하는 아르바이트까지 꽤 오랜 시간 해봤지만 이 대인기피증은 극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물론 아르바이트 전보다는 좀 나아졌음에도 이 대인기피증은 공직생활 초기에 나를 적지 않게 괴롭혔다. 그래도 어차피 다들 신규니까 서로 모르는 사이 아니냐는 자기 위로와 함께 도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면접스터디조차 하지 않은 나와는 다르게 이미 면접스터디 등으로 안면을 튼 동기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단재교육연수원으로 향했다.

 단재연수원에서의 생활은 걱정한 만큼 힘들지 않았다. 50분 수업 10분 휴식의 반복이었기에 동기들과 친목도모 따위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잘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5일 동안의 출퇴근 끝에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채운 채 연수를 수료했다. 화가 난다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라 단지 이게 뭐지?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실무에 도움이 되는 연수는 달랑 두 과목, 2시간이었나 진행된 에듀파인 실습과 1시간 동안 진행된 공문서 바로 쓰기 뿐이었다. 물론 나머지도 다 재미없지는 않았고(대부분은 재미없었다) 유익한 정보도 있었으나 실무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강의뿐이었다. 이 상태로 바로 일을 시작해도 되는 건가? 내가 듣기로 행정실은 굉장히 작은 조직이라는데 OJT 같은 직무 간 훈련이라도 시켜주는 건가?라는 의문을 뒤로하고 단재연수원을 떠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더군다나 시험 성적도 우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몇 달을 기다린 다음에야 발령을 받아야 했는데 그나마 들었던 에듀파인에 대한 기억도 이미 멀리멀리 떠나가고 말았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발령 통지를 받았고 도교육청을 방문하게 됐다. 정기 발령인 1, 7월도 학기 초 발령인 3, 9월도 아니라 같이 발령받은 동기는 많지 않았고 당연히 아무와도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뻘쭘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발령지는 3순위로 지망했던 A교육지원청이었다. 동기들 분위기를 보니 지망과는 별 상관없는 무작위 발령이었지만, 어쨌든 고향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동기 몇 명은 이미 도교육청 선배들과 안면이 있는 듯 농담을 주고받고는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교육청에서 실무수습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뭔가 여유가 뿜뿜 뿜어져 나오는 남자 선배의 인솔 아래 임용장을 수여받고 여자 동기들보다 못하다는 소문 들리면 각오하라는 농담으로 배웅을 받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밭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농사일을 하던 도중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잘 못 알아듣겠어서 틱틱거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전화를 다른 분이 바꿔 받으셨는데 지역청 발령이 난 A초등학교였다. 알고 보니 처음 전화하셨던 분은 행정실장님이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A지역은 고향과 가깝다고는 했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이었다. 네비를 찍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A교육지원청은 내 상상 속 이미지와는 다르게 깔끔하게 디자인된 도심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연히 같이 발령 난 동기는 한 사람도 없고 타시군에서 인사이동하신 타 직렬 공무원 한 분과 임명장을 받았다. 교육장님과 인사하는데 대뜸 술은 좀 하냐는 말에 이게 말로만 듣던 지방직 공무원의 현실인가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온 김에 A초등학교도 들러서 인사를 하고 인계인수를 위한 시간을 잡았다. A초등학교는 굉장히 작은 시골 초등학교였는데 모교인 초등학교를 생각한 나는 깜짝 놀랐다. 모교에 비하면 학교 부지가 굉장히 컸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들어가니 웬 어르신 한 분이 나와서 주차를 안내해주고 행정실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이셨다. 맘 같아서는 그날부터 발령일까지 배우고 싶었으나 전임자 분도 발령을 받아 바쁘다는 말씀에 이틀간 와서 배우기로 했다. 후일 교장선생님과 실장님이 발령도 전에 이틀씩 와서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칭찬을 하셨는데, 그 당시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지배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긴장을 잔뜩 하고 온 인계인수일 첫날은 하루 종일 멀뚱멀뚱 자리에 앉아 시간만 보낸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은 새로 온 신규랑 일을 어떻게 하냐 네가 다 해놓고 가라는 듯 몰려왔고 전임자는 어떤 일은 처리해주고 어떤 일은 새로 온 주무관님과 하라며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선생님들과 농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절대 저렇게 못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도 멀뚱멀뚱 자리에 앉아 있자 보다 못한 전임자 분이 규정 모음집 같은 책자를 하나 던져주며 이해가 안 가더라도 한 번 읽어보고 있으라는 말을 했다. 정말 하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소리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야속했지만 지금 와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지금이야 우리 교육청이나 노조에서 신규를 위해 정비한 체계적인 매뉴얼 등을 배포하였지만 당시에는 단편적인 매뉴얼 말고는 교육학술정보원에서 배포한 에듀파인 매뉴얼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첫날은 아무 소득 없이 퇴근을 했고 둘째 날이 됐다. 둘째 날은 그래도 옆에 앉혀놓고 이거 저거 알려주었다. 문서가 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과제카드는 무엇인지 출근하면 현금출납부를 맞추어야 한다던가 세외라는 건 무엇인지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들어도 이해는 안 갔지만 나도 글러먹은 학생이었던 것이 메모 하나 없이 그냥 듣기만 했다. 그 와중에 컴퓨터 만지는 걸 옆에서 본 전임자 분이 컴퓨터를 잘 다루는 거 같아서 일도 잘하겠단 말을 해주었다. 실제로 이 말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성장 과정에서 컴퓨터를 많이 만져보았고 덕분에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이 이력이 실무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실무자 분이 출근하면 해야 할 일을 엑셀로 정리해놓은 파일을 보여주면서 출근하면 이 파일을 보면서 일을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둘째 날도 끝이 났다.

 

  두려움은 전혀 해소가 되지 않은 채 첫 출근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출근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만 머리를 맴돌았다.